헬로우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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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울타리를 만들어준 헬로우드림
올해 6년차선ㅇ맘의 성공사례

지금 헬로우드림 재택부업을 시작하신 새내기분들 힘내시라고,
저의 과거지사 힘들었었던 내용들을 올려 보려고 합니다.
저처럼 이렇게 힘든 시기에 아마도
헬로우드림 일을 접하지 않았을까 생각도 들구요.

6년 전으로 거슬러 내려가 정말 간절했던 저의
가정환경을 있는 그대로 모두 오픈하여 올려봅니다.

이 글을 읽고 우시는 분 없길 바라며...
선ㅇ가 저를 아빠라고 호칭했던 사연을 나열해 봅니다 ㅠㅠ

슬픈 환경 어렵게 살아왔던 선ㅇ맘의 과거는 이랬습니다.
헬로우드림이 없었더라면 지금도 허덕이며 넉넉치 못한 환경에서
선ㅇ가 자라고 있었을 거란 생각을 하니 아찔합니다.

6년전으로 거슬러 내려가 볼께요..
11년차 중앙일보 본사계열의 사업을 하던 동갑내기 신랑이
하루 아침에 사업에 미끄러져 1년동안 법원 다니면서
폐인모드로 1년이란 소중한 시간을 우리 부부는 보내야만 했었어요.

그당시 구로구 시댁 옆에서 살고 있던 저는
매월 생활비 1OOO만원씩 받고, 신랑역시 품위유지비라고 해서
월 9백만원씩 쓰던 사람이었습니다.

크게 잘살지는 않았지만 남에게 손 안벌리고 쇼핑하고 싶음 쇼핑다니고,
사고 싶은것 있음 맘편히 살면서 어려운 생활고를 전혀 느끼지 못하고
살던 1人 이었습니다.
광명,영등포,구로 이 세군데 지역은 우리 회사를 걸치지 못하면 신문잡지 광고를 못하였고,
회사는 전단배포 일을 담당하고 지국에 전달까지 해주는 중요한 역활을 맡은 회사였었어요.
그러다 자금이 세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법정싸움까지 가게 되었는데,
결국은 민사로 엄청난 손해와 회사 문을 닫기까지 되었답니다.

그당시 30평 빌라를 팔고 전세 9천으로 하향하면서
이후 지속적인 하향생활..
월세 2천만원짜리까지 살다가 결국 시댁에 들어가 살기까지 했구요.
대학졸업하자마자 교통사고로 경추를 크게 다쳐서 19년을 누워 대소변을
다 받아야만 했던 아주버님과 시누식구가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던 터라
우리 세식구 있을 자리가 없었다고나 할까요.
이렇게 있음 안될것 같아 펜션관리 하는 일을 찾아봐야만했고,
먹고 자고는 관리일이다 보니 생활비 걱정은 안해도 된다지만
생후 8개월 선ㅇ를 받아주는 곳이 없더군요. 서럽고, 막막하고, 힘들고, 지칠때쯤...
십자수부업을 해보고자 구직사이트를 밥먹듯이 들락거리면서 알게된 헬로우드림 !!
그런데 막상하려니 혹시 유령회사 되진 않을까.. 일해놓고 급여 들어오지 않는 것은 아닐까..
의구심이 하늘을 찔렀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었죠.

그래 해보자!! 다짐하고 신랑한테 말했더니 그런거 사기아닐까?
괜히 맘고생하지말고, 내가 알아서 다 할테니 선ㅇ만 잘보라고 하더군요.

며칠이 지나고 다시 신랑한테 말을 꺼냈어요..
나 진짜 잘할자신 있는데, 옆에서 화이팅 해주면 안될까? 라는 말에..
원래 제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아는 남편이기에,
너라면 잘 할 수도 있겠다..
이 말한마디에 힘을 얻어 시작을 했답니다.

이렇게 헬로우드림이랑 인연이 되어 지금까지 6년차 일하고 있고,
제가 추진력이 강한 편이라서 이것다 싶음 뿌리를 뽑는 성격.
지금도 갑장인 친구같은 신랑은 "응원" 해주고 있답니다^^
이렇게 오징어를 입에 물리면 한참 십으면서 웃고, 겨다니면서
다른것 집어먹지 않아서 다행이었지만,
보챌때가 있을땐 아가띠 앞에 두르고 "홍보" 하면서 애로사항들도 있었구요.

하지만 이것 아님 안되었기에 또 직장은 나갈 수 없었기에,
식물인간처럼 누워지내시는 아주버님을 간병하는 시어머님께 맡기기가 죄송했고,
저 스스로 해내고 싶은 마음과 꼭 이루겠다는 다짐의 열정과
통장속의 주인이 되고 말겠다란 저와의 약속을 저버릴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선ㅇ 돌이 되었는데 신랑이 평생부업이니 선ㅇ가 좀더 큰다음에
해보라는 말에 공백기간이 생겼어요.

그 이후 저는 선ㅇ에게 아빠가 되었어요..
저를 부를때 아빠.. 아빠.. 하는거에요..
지금 지나고니까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이지,
그당시때 얼마나 맘이 찢어지던지...ㅠㅠ

주말에 만날때면..
"아빠 안가시면 안되요~?"
이렇게 말하는데 헤어질때면 눈에 밟혀서 미치겠는거에요..
가끔보니 아빠도 아빠고, 저도 아빤줄 알고 컸어요.
나보고 아빠래...휴~ 애가 뭘 알겠어요..
그래서 직장 다니면서 헬로우드림 본사 홈페이지에 들어와
처음부터 다시 정독하기 시작했어요..
빨리 우리식구 합치는 길은 신랑도 저도 넘어지면
아퍼 소리 할 시간도 없이 일어서서 달려야만 하는 상황 !!
그러면서 직장 그만두고 헬로우드림에 미친듯이 메달렸답니다..
신랑과 저 떨어져 있을 당시 돈만 벌었어요..
그런데..!! 남 밑에서 받아봐야 얼마나 받겠어요.. ㅠㅠ

아끼고, 안먹고, 안사고 ... 드뎌 해냈습니다.
성남 친정쪽에서 투룸을 얻을 수 있게 되었거든요~
이때부터 전 헬로우드림에 올인하겠다 다짐하면서 전업으로 일을 했고,
신랑도 정말 고생 많이 했구요..

사주에도 없는 용역 제가 시켰습니다..
전화번호 몇군데 뽑아놓고 새벽 4시에 전화걸게 만들었어요..
용역 아시나요~? 일명 노가다에요. 공사판에서 일당받고 일하는..
사업하면서 남을 부리기만 했지 남밑에서 일을 안해본 사람이라
이런걸 어떻게 하냐고 처음엔 이렇게 말하는데 정말 때려주고 싶더라구요~

세식구 이산가족으로 살지 않는 것만으로 하늘에 감사하면서
어떤 일이든 부딪힐 생각을 해야 하는데 말이죠.
하루만 시간을 달라는 남편의 말에 호응해 주었습니다.
하루가 지난후 해보겠다는 신랑 말에 저 박수치면서 토닥여 줬어요.

보름정도 나갔는데 어떤 업체에서 픽업.
정석적으로 리모델링과 인테리어를 3년 배우고 자기사업을 하게 되었답니다.
워낙에 부지런하고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라 전 믿었거든요 ^^
지금은 그 일도 하면서 다른 오너를 해보고자 현재는
그 직책에 차장으로 있는데 곧 사업도 시작하게 될 것이고요.

헬로우드림 재택부업 공백이 있다가 13년 7월 복귀해서
시작부터 200만원정도의 수입이 되었고 이후 목표를 가지고 일했더니
매달 3백..4백..5백..8백.. 천만원 까지 해냈어요 ^.^
지금까지 어려운 환경과 사업의 실패로 단칸방 하나 없어
우리가족 이산가족으로 살게 되었다는 생활고에 시달렸던
과거지사를 꺼내어 보았는데요..

저처럼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헬들 시작한
여러분들도 하면 다 이룰 수 있답니다..
본사는 광고대행사예요.. 광고=홍보 입니다 !!

회원님 중에 65세,64세,63세 이모님이 계셔요..
큰이모님, 둘째이모님, 막내이모님... 이라고 호칭하면서,
일을 잡아드리고 있는데 너무 잘 해내고 계셔요.

젊은 사람들 처럼 일처리가 빠르지는 않지만,
더디고 느릴 뿐이지 이해력은 대단하세요.
손가락이 빨리 따라주지 않아도 얼마나 열심히 하시는데요 ^^

부지런한 분들은 꼭 성공 하실거라 믿어요~!
누가 먼저 성공하느냐.. 좀더 늦게 하느나.. 의 차이일뿐.
실천하고 행동에만 옮기신다면 누구든 할 수 있는 일이 헬로우드림 입니다.

타수는 독타에 사진올리는것도 모르시고 시작하시는 분들 많습니다.
근데 지금은 멋진 포스팅도 소화해 나가시고
50대 후반 분들은 최적화도 되었구요.
최적화 블로그 만들기까지 얼마나 노력을 했을까요..?
전 제가 <권태기,블태기>가 올때면 6년전 세식구 이산가족으로
살았던 시절을 떠올린답니다. 그러면 정신 번쩍 들거든요~ ㅎㅎ

늘 초심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고 더욱더 발전하는 "자신" 이 되기 위해
항상 노력하는 선ㅇ맘이 되겠습니다.

이산가족에서 상봉하여 살게 되고, 가족의 행복과 삶의 윤택함을 주신
헬로우드림 대표님과 본사 직원 모두에게 감사함을 표합니다 ^^

앞으로 저 10년 더 일해도 되지욤~? ^.^
그땐 헬로우드림 1위도 해보고 싶구요..
이건 꿈이겠지만, 꿈은 이루라고 있는거잖아요!
1등은 꼭 한번 해보고 그만 두겠습니다 !!
헬로우드림이 없었더라면 << 너무 끔찍하네요!
가족의 울타리를 만들어준 헬로우드림.
아이와 떨어져 살때의 그 찢어지던 하루하루..
잠에서 깨어나기 싫을 정도로 하루가 버겁고 힘들었던 시절..
헬로우드림이 없었더라면 어떻게 빨리 일어설 수 있었겠어요..
다시 한번 고개숙여 감사함을 표합니다 (--__)